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웨스 크레이븐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커리어와는 달리, 본인은 딱히 호러 전문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, 호러 장르에 대한 사명감이 충만하다든가 한 것도 아닌 듯. 음산하면서 뭔가 확 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호러영화밖에 없었고,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계속하게 됐고, 그러다보니 그냥 계속하게 되었다고. 다른 호러영화도 잘 안 본다고 한다. * "처음엔 몰랐지만 내가 뭔가 잘하는 게 있으니까 내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것 아니겠나. 이 사실에 만족하고 호러영화 감독이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. 더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호러영화는 이미 내 이름의 일부가 되었다. 지난해 <뉴욕타임스> [[십자말풀이]]에 내 이름이 다섯번 나왔다.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은가. 물론 나도 트뤼포 같은 명감독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어쩌나. 휠씬 못한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. 그래서 만족하기로 했다." (웃음) - 2005년 인터뷰 중에서 -[[http://www.cine21.com/news/view/mag_id/33278|출처]]~~뉴욕 타임즈 십자말 풀이를 좋아하는구나!~~ * "왼편 마지막 집" 이전에 [[포르노]] 영화 제작 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, 포르노 산업을 다룬 2005년 다큐멘터리 "인사이드 딥 스로트"에 출연하여 가명으로 많은 포르노를 만들었음을 증언한 바 있다. 사실 이 바닥에서는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닌데, 호러물 감독들에서 포르노 감독을 겸업하던 이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. 악명높은 [[트롤 2]] 각본과 제작자이자 여러 호러들을 감독하던 조 다마토는 포르노 홀로코스트, 포르노 타잔, 나치 포르노 시리즈를 여럿 제작, 또는 감독했던 포르노 전문 감독이었다. * 기획했다가 끝내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도 많은데, 그 가운데 하나가 컷 앤 런(1983). 밀림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고어 모험물인데 바로 웨스 크레이븐이 기획하던 마림바라는 영화였다가 흐지부지된 것을 [[필링 러브]], [[카니발 홀로코스트]]로 알려진 루게로 데오다토가 감독하여 만들어졌다. * 아들 조너선 크레이븐은 1972년 "왼편 마지막 집"에서 아역으로 출연한 비범한 인물로, 1989년 "영혼의 목걸이"부터 편집, 각본, 공동제작 등으로 아버지의 일을 도왔었다. * 필모그래피 작품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데, 꽤나 자주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. * [[거미]]를 무서워했는데, 1981년작 "악령의 리사"에서 [[샤론 스톤]]의 가슴 위로 거미가 기어다니는 씬을 찍을 때 스톤이 무명 배우임에도 "니가 한번 해봐"라며 개겼다고 한다. 스톤이 대사라는 게 있었던 첫 영화였다. 그 때 웨스 크레이븐이 거미를 팔에 얹어 본 이후로는 거미공포증이 없어졌다고.[[http://www.cine21.com/news/view/mag_id/33278|출처]] * 영화 배우로도 활동하기는 했는데 거의 [[카메오]]이다. 자신이 감독한 영화에서도 카메오로 여럿 나왔다. * 그와 함께 일한 제작자들과 배우들에 따르면 굉장히 신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한다. [[https://www.hollywoodreporter.com/movies/movie-features/scream-movie-cast-wes-craven-1235039088/|#]] [[분류:1939년 출생]][[분류:1971년 데뷔]][[분류:2015년 사망]][[분류:미국 영화 감독]][[분류:미국의 영화 각본가]][[분류:미국의 영화 제작자]][[분류:미국의 개신교 신자]][[분류:클리블랜드 출신 인물]][[분류:존스 홉킨스 대학교 대학원 출신]][[분류:뇌종양으로 죽은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